전주에 살아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예술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전주국제영화제, 가을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있다. 올 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영화제가 취소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맥만 잇는 느낌으로 축소해서 축제를 진행한다고 한다. 상영관에서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아주 특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퍼핏 애니메이션 puppet animation을 만드는 퀘이형제 Quay brothers 의 전시이다.
전시는 전주 팔복동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되고, 한 타임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입구에서 이름/연락처 적고 열체크하고, 손 소독하고, 마스크까지 끼고 입장-
브로셔도 무료로 줘서 작품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브로셔 첫장만 봐도 기괴한 느낌이 드는데, 모든 작품이 이런 느낌이다. 불안하고 어둡고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한 작품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유명해진 악어들의 거리 Street of Crocodiles 라는 작품이었다. 전시장 안에 이 단편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상영관이 있고 그 안에서 관람할 수 있다. 내용은 무대 제작자가 어떤 소품에 침을 뱉고 그 침이 떨어지면서 인형이 지하세계로 가고 여러 제단사 (포스터에 나오는 저 무서운 인형들)를 만나는 그런 내용이다. (무슨 내용이지?)
나 같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영화 마지막에 내레이션을 넣어주는데, 내레이션이 영어가 아니라서 영어 자막이 나온다. (대충) 인간의 가치가 하락하는 산업화/현대화 시대에서 인간의 열정이나 본성 같은 것들이 억눌러지고, 이런 시대에 아무것도 성공하거나 확실한 결론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인형들의 분주한 움직임이나, 전혀 인간같지 않은 인형들이 인간을 연상시키는 등 시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음악이.. 영화음악이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영화 외에도 퀘이 형제의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블랙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무려 크리스토퍼 놀란이 투자 제작한 '인형의 숨'의 작업물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정말 새롭고 집착적인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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